[칼럼] 다양한 정체성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민생과제다.

작년 3월, 단체에 MTF 트랜스젠더 당사자 한 분(가명 T님)이 문의 메일을 보냈다. T님은 전북지역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말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를 했었다. 그 중 T님에게 좌절감을 안겼던 말의 내용이 기억에 남아있다. T님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 도움을 받을 방법을 찾고자 보건복지부 129 콜센터에 전화를 했으나 "트랜스젠더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라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2월 말에서 3월 초순 사이, 성적소수자들의 연이은 부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특히 트랜스젠더임을 커밍아웃하고 부사관 복무를 계속하고자 했던 故변희수 육군 하사의 소식이 전해지며 행동하는 추모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차별과 혐오가 더 이상 패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하라!”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계속 군 복무를 하고자 했으나 육군 본부는 변 하사가 '심신 장애3급'에 해당한다며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결국 2020년 1월, 전역심사위는 고인에게 강제 전역을 처분했다. 이후 고인은 전역 처분의 부당함에 맞서 육군본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고 기각 결정이 되자, 지난 해 8월에 강제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고인의 용기에 사회적인 지지와 응원도 이어졌으며,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개최하여 육군의 강제 전역 처분은 인권침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고인의 소식에 비난 여론에 의식한 국방부는 ‘안타까운 죽음’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아니지만, 정책의 영역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당사자들의 삶이 전혀 고려되지 않음을 곱씹게 되며 T님의 메일이 떠올랐다.

육군의 강제전역 결정,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의 태도는 그 자체로 문제지만 현재 성소수자 관련 세계적 추세에 비춰 봐도 심각한 문제다. 국내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ICD-11)가 2018년에 개정되었다. 개정문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위해, 기존의 정신질환 하위의 ‘성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는 진단명을 삭제했다. 대신 성건강상태(sexual health)하위의 ‘성별 불일치(incongruence)’라는 진단명으로 재분류하였다. 이는 의료적 관점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상태로 인지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다양한 영역의 학계와 전문가들은 성별 위화감에 대한 의료적 조치(예를 들어 성별재지정 수술 등)는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다양한 방법과 순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의학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복무중인 군인이 성별재지정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육군이 심신장애로 판정하고 강제전역 시킨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폭력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2021.3.31트랜스젠더 가시화의날 맞이 차별금지법제정 전북행동 기자회견)

국제사회의 인권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제22호(2016)를 통해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사안에 대해 폭력∙강압∙차별로부터 벗어난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과 선택을 할 권리’를 지닌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성과 재생산 건강권의 완전한 향유를 보장하는 건강관련 시설·재화·정보 일체에 대한 방해받지 않는 접근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며, ‘적절한 주거,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 및 환경, 건강관련 교육 및 정보로의 접근, 모든 형태의 폭력∙고문∙차별 그리고 기타 성과 재생산 건강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권침해로부터의 효과적인 보호 등’의 요인도 권리에 포함한다고 명시한다. 요약하면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여부 등 개인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러한 지향과는 한참 뒤떨어져있는 수준이다. 故변희수 하사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 그리고 T님이 들었다고 했다는 보건복지부 콜센터의 답변은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만19세 이상 트랜스젠더 응답자 591명 중 65.3%가 1년 동안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혐오표현을 접했다는 응답 비율도 전체 응답자의 87.3%에 이르렀다. 아울러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가 노동권을 위축시키고 있음도 드러났다. 구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57.1%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구직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모두의 노동자가 차별 없이 존중 받는 평등한 일터는커녕 차별과 혐오의 장벽이 굳건함을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다. 그렇기에 고인의 강제전역이 단지 한 군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 영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으로서의 배제임을 공감하고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차별과 혐오의 카르텔에 맞서 양한 정체성의 주체들과 연대해 평등사회를 향해 나가는 것은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꿈쩍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 정치권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외치는 행동하는 추모에 나서야 다.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노동권을 비롯한 보편의 인권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는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 민생과제다.’, ‘매일 마주치는 차별과 혐오의 공기 속에 존엄함을 잃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시국이다.’라고.

21대 국회에서 발의가 되었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논의하지 않는 차별금지법을 지금 당장 제정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필자 :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