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지난주 군산, 부안, 고창 순으로 산업자원부(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핵폐기장 설명회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설명회라는 것이 사업의 정당성과 민주적인 절차 그리고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위험성과 안전성에 대해 알리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유치를 추진하려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설명회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찬·반의 대립이 심했다.

군산을 제외한 부안과 고창은 군수가 핵폐기장 유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핵폐기장 유치 측의 일방적인 홍보를 진행하는 설명회에 장소를 제공하지 않아 한전 회의실에서 치러졌다. 부안은 위도 주민 20여명만 앉혀놓고 졸속으로 진행되었고 고창은 산자부 관계자들이 설명회장에 입장을 하지 못해 영상물로 대체하는 등 엉성하게 진행되었다.

설명회 자리에는 실질적으로 관심이 있어 찾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오로지 유치를 신청하려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거센 항의와 몸싸움만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4곳 예정부지와 유치 신청 움직임을 보인 3곳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를 모두 예측하고 있는 한수원과 산자부가 굳이 설명회를 강행하려는 것은 향후 직권 지정에 대한 명분 쌓기용 이라는 지적이다.

핵관련 시설이 들어서기 전에 정말 지역사회가 핵분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강현욱 도지사는 지역내 찬·반 양론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역여론을 조정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프랑스 로브 핵폐기장을 다녀온 후 안전성에 확신을 얻었다며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선언하고 행정적인 지원을 위해 지원단까지 만들었다. 이것은 도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도정일 뿐이다.  중요한 지역 현안을 결정함에 있어 단 한차례의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없었다는 것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며 민주사회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최근 새만금사업과 양성자 가속기 등 지역 현안에 도민의 의견을 모으는 방식이 다 그렇다. 지역 소외론과 개발 욕구를 조장하여 감정을 격앙시켜 선동하는 방식이다. 또한 찬성측 주민을 동원하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행정에 활용하겠다는 낡은 방식과 삭발을 하면서까지 어느 한쪽의 입장을 옹호함으로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개발 사업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따지는데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변화된 객관적인 조건을 분석하고 사업의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관계자나 중앙정부를 설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떼쓰는 아이가 떡 하나 더 먹는 시절은 갔다.

핵폐기장과 핵관련 시설은 개발 독재 시대의 발전 모델에 불과하다. 21세기의 지역 경쟁력은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전통, 문화로 대표된다. 경기전, 교동 한옥촌의 전통문화와 판소리, 비빔밥 등 그리고 아리랑과 섬진강의 무대인 인문환경까지 브랜드 가치가 높다. 청정 농토의 이미지와 관광자원을 고려할 때 전북의 지역발전 전망은 아주 밝다.

그런데 전라북도는 대규모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사업 특히 중앙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내려준 시혜성 사업에만 목을 메고 있다. 이러한 낡은 사고로는 21세기 전북 발전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만약 이러한 사업이 일정 정도 경제적 대가가 있다하더라도 일부 주민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전라북도는 더욱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하며 한 사람의 피해도 막아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이 도지사의 할 일이다. 四通八達(사통팔달)-다양한 의견과 정책이 도청으로 모일 수 있도록 도청은 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