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5월 16일 오전, 우리 일행은 고창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곳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고창에서 찬성과 반대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주눅들어 있었고, 또 그만큼의 설렘도 있었다.
그후 몇차례 더 고창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만나보려고 계획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비교적 상세히 들어 볼 수 있었다. 그중에는 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고창을 발전시킬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폐기물 처리장이 종국에는 고창을 폐기시키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고창에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주민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한편으로 드러나고 또 한편으로는 잠재해 있는 기대와 분노, 소문과 소외감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고창에서 폐기물 처리장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찬성측도 반대측도 폐기물 처리장의 설계도면조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조차 고창이 방폐장 건설 후보지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알았다 했다. 고창군의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업자원부(산자부)도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한수원)도 고창군에 공문 한장 보내온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바로 이것이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대하는 태도 아니겠냐며 분개했다.
더 놀라운 일은 찬성측 인사의 안내를 받으며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알려진 해리면 광승리 일대를 방문했을 때 있었다. 동호해수욕장 부근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너무나 간결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넓은 뜰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야산들을 가리키면서 후보지가 "저기부터 저쪽 끝까지 60만평"이라고 말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광승리 마을은 그가 가리키던 한쪽 야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모내기하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준 광승리 이장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주택이 폐기물 처리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책임있는 정책결정자를 만나보지 못해 현지 주민들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전달해 본 적도 없다 했다.
폐기물 처리장이 입지하게 된다는 해리면과 닿아있는 심원면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폐기물 처리장 부지의 토지 보상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는 것이다. 보상액이 시가의 몇 배라느니 감정가의 몇 배라느니, 후보지에 포함되면 직접보상을 받고 인근 몇 킬로미터 이내는 간접보상을 해준다느니 하는 소문이 입소문으로 떠돈다 했다.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아무도 그 사실을 산자부나 한수원 관계자로부터 직접 들은 사람은 없노라고 목청을 높였다.
고창을 달리면서 여기가 고창이라는 사실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무수히 나부끼고 있는 현수막과 깃발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고창사람들의 대립과 갈등과 기대와 분노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고창에서 만난 사람들은 찬성측이든 반대측이든 모두 고창을 고향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고창이 고향인,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안다했다. 고향 형님이고, 학교 선후배고 동네 이웃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서로를 얘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방폐장에 대해, 원자력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고창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구조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 갈등의 가장 주요한 당사자이면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같은 고향에서 함께 자라온 고창 주민들이었다.
단언하건대 고창에는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고창을 드나들던 5월말까지는 그랬다. 폐기물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목소리 높여 강조하는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도 고창에 없었다. 그들은 한번도 고창에 온 적이 없었다. 당연히 고창 주민을 만난 적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신문의 활자로만 고창을 드나들었을 뿐이다. 주무부서인 산자부도 고창에는 없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고창군수를 만난 건 6월 중순의 일이다). 정작 당사자인 한수원도 고창엔 없었다. 그들은 고창에서 TV의 공익광고를 통해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을 구사하고 있었다.
고창에는 TV화면과 신문기사와 칼럼 등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실은 없고 소문만 떠돌고 있었다. 폐기물 처리장 주변이 최고의 관광단지가 될 것이라는 소문, 주민이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 엄청한 지원금이 지역에 쏟아질 것이라는 소문, 심지어 어린이들의 꿈이 모두 실현될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스며드는 소문들에 의해 고창은 갈라지고 있었다. 방폐장 후보지 선정과정과 건설 계획, 설계도면 조차도 본 적 없이, 사람들은 나뉘고 있었다. 점점 깊어가는 주민들간의 갈등은 산자부나 한수원에게는 남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고창 주민들에게 산자부나 한수원 그리고 폐기물이 안전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지역 대학의 전문가들이 어찌 남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