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들, 죽음의 행렬 막기 위한 근본대책은 '전·의경제도 폐지' 주장


"날마다 탈영을 생각한다"
전북도경 소속 한 의경이 기자에게 전한 고백이다. 최근 수원남부경찰서 소속 전·의경이 부대내 상습적 구타로 인한 자살사건을 계기로 인권단체들 안에서 '치안보조'라는 명목으로 시위현장에 동원되는 전·의경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 12일 논평을 내고 "폭력경찰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전투경찰이 그들 내부에서 또하나의 전투를 일상적으로 치르고 있는 현실은 (병역)의무병들로 시위진압 부대를 창설 유지하는 제도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랑방은 "군인들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는 것은 시민에 대한 폭거이며 의무병들의 양심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지적하고 "국방의 의무에는 시민을 향한 전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의무병들로 구성된 시위진압부대를 폐지하지 않는 한 전·의경 내부의 폭력의 사슬은 끊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들과 민중운동을 적으로 간주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용병으로 이용되고 있는 전·의경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지난 91년에도 있었다. 당시 한 현역전경은 '국민을 상대로 원하지 않는 시위 진압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헌법교과서에는 양심을 '옳고 바른 것을 지향하는 인간내부의 진지한 소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4년이 지난 95년 5:4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시민들의 집회시위 자유 막는 '용병'으로 이용되는 전·의경
군대내 폭력 근절을 위해 포괄적으론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지나칠 수 없다.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의 주종우 대표는 "결국 국방의 의무라는 징병제 체제 아래에서는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라고 지적했다. 주 대표는 "부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의무병 제도 아래에서는 한 인간을 부품 취급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자살한) 제2의 최 군을 막기 위한 근본대책은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주대표는 -해전 군에서 아들이 의문사를 당한 후 군경의문사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멀기만 한 것 같다. 사건이 발생한 경기 도경의 작전전경계 최영덕 계장은 "시위문화가 과격하고 이를 막는 일이 힘들다 보니까 고참들 완력이 들어간다"며 전·의경 부대내 고질적 구타의 문제를 시위대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이 발생한 수원지역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다산인권센터 송원찬 활동가는 "상습적인 구타에 대한 감시체제가 있어도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왕도는 없다"고 전제한 뒤 "인권사회단체로 구성된 상설적인 감시기구를 만들어 지속적인 감시와 인권교육, 신고센터 설치·운영 등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밝혔다.

최군의 죽음의 항변을 생각하자
작전전투경찰순경(전경)은 간첩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67년 창설됐으며 의무전투경찰순경(의경)은 치안업무보조의 명분으로 82년 창설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김 일경이 매일 구타한다. 잠도 안 재운다. 인격을 모독한다. 도시락 반찬 남겼다고 끌려가서 맞았다. 의경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이게 내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다".
최 모군의 유서에서 드러난 전·의경의 절망적인 현실은 전·의경 제도나 징병제 폐지가 먼 이야기 같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는 절박한 요구임을 항변하고 있다. [김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