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자발적인 투쟁, "우리는 이미 이겼다"
1.
24일, 부안읍내 수협 앞에서 본대회를 마치고 군청까지 행진하여 정리집회를 하고 있었다. 집회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고 후덥지근한 날씨는 모두를 짜증나게 하고도 남았지만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도 않고 그날 발표된 정부의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규탄하고 있었다.
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한마디하겠다고 앞으로 나왔다. 마이크를 잡자 "난 변산에서 살고 있다. 오래 전에 과부가 되어 혼자 몸으로 6남매를 키웠다. 막노동, 포장마차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한다. 한눈에 봐도 그 할머니는 참 고생을 많이 하신 분으로 보였고, 나는 한많은 여자의 신세타령을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눈물을 멈추더니 "백성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다. 난 자식들을 다 키워 걱정이 없지만 다른 자식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평생을 거짓없이 깨끗하게 살아왔고 노동하여 번 돈이다. 힘내서 싸우라"며 6년 동안 키운 소를 판 돈 200만원을 성금으로 내놓았다.
한 순간 모두 놀랬다. 이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에 이루어 진 사건이었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조건없는 사랑이 느껴져 무덥고 습한 날씨 긴 시간의 집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훈훈한 마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2.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주민들은 부안읍내 중심에 있는 수협 앞으로 모여 촛불을 하나씩 들고 그야말로 잔치를 벌인다. 며칠 전학생들 몇 명이서 시작한 촛불시위와 작은 문화 행사는 바로 다음날 2000여명이 모이는 주민들의 잔치 마당으로 이어졌다. 집회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책위에서 양초를 준비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저녁을 먹은 주민들이 수협 앞으로 슬슬 모였고 누군가 초를 준비해와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담은 영상을 본다. 청소년들은 노래와 율동을 준비해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창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창을 하고,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은 하모니카를 불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노래를 선물한다. 또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한다. 후원도 이어진다. 적게도, 많게도,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정성이 담긴 후원금을 낸다. 핵쓰레기장을 반대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표현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다. 각기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즐거워한다. 수천 개의 촛불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런 주민들의 잔치마당은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열린 마당을 만드는 것은 부안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시골 사람들의 순박함도 있겠지만 핵없는 세상을 향한 주민들의 간절한 열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부안에서 주민들과 한번이라도 함께 투쟁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마치 80년 해방 광주를 보는 듯하다'고 말한다. 공권력의 탄압 속에서 이뤄지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투쟁들은 이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자체로 이미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부안에서는 소리없는 민초들의 자발적 행동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부안군민들의 핵쓰레기장 무효 투쟁은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폭력적인 국가권력으로 날치기해서 결정된 위도의 핵쓰레기장 선정은 이미 정당성을 잃었을 뿐만아니라 김종규 군수는 물론이고 현 노무현정권마저도 주민들의 도덕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오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