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의 투쟁을 '님비'라 하는가
정재철 (부안 백산고등학교 교사)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 추방 부안대책위가 꾸려져 7월 9일 군청 앞에 천막을 쳤던 농성이 구속과 수배의 어려움을 넘어 40일 넘게 강고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복작이는 부안성당을 찾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벌들의 웅성거림처럼 들리고 널브러져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잽싸게 챙겨서 해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꼬맹이들이 뛰어논다. 부모가 이곳에 와서 일하기도 하고 교도소에 가거나 수배가 되었으니 아이들은 이곳 외에 마땅히 갈곳도 없다. 식사시간이면 각 지역의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내것 네것이 없는 나눔과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공동체를 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부안의 정치의식이 10년은 빨라졌지요"

빵과 서커스를 걷어치워라
해방 후 부안은 산업개발에서 소외되고 고통스런 1차 산업으로 어려움을 감수하며 극복했다. 덕택에 청정지역이라는 듣기에도 민망한 가슴아린 자위를 가지고 산다. 요즘 부안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것은 보상과 개발이라는 빵이다. 정부는 국책사업을 하기 위하여 돈을 가지고 흥정하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사람들의 사고를 질식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방법을 택한다. 한국수력원자력(주)은 핵폐기장이 위험시설이 아니고 마치 복지시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가막힌 홍보물을 가정마다 돌리고 해외시찰에 돈을 뿌린다. 그러나 빵과 서커스가 로마를 찌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듯이 핵폐기장은 부안의 미래를 찌르는 비수가 될 것을 안다.
부안사람들을 님비로 몰아부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는 화장장은 물론 자신이 늘상 필요로하는 LPG 충전소조차 건설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진짜 님비주의자들인 권력자로, 여론주도층으로 숨어 있다.

부안에는 정부가 없다

부안사람들은 싸움꾼이 아니다. 농사짓고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다. 자연의 삶을 몸으로 사는 조상들이다. 17년간 표류한 방폐장을 이곳에 설치하겠다고 한다. 무소속 군수에게 얼마나 큰 당근을 제시했으면 자신들을 군수로 만들어준 군민들을 배반하고 유치신청을 내게 했는가.
여기에는 영광 원자력발전소와 정읍의 방사선센타, 부안의 방폐장으로 이어지는 서해안에 핵 오아시스(?)를 만들어 보려는 고도의 음모도 보인다.
부안에 6000 여명의 전투경찰을 보냈다. 인구 7만의 소읍에 생전 처음 보는 대군이다. 부안 사람들은 전투경찰과 싸우고 싶지 않다. 책임 있는 정부관계자들의 성의 있는 답변을 듣고싶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정부도, 만날 사람도 없다. 이들은 신문 속이나 TV 속에서 빵과 서커스를 앵무새처럼 말하는 너무 먼 당신으로 나타난다.
우리에게는 공권력도 없고 언론도 없다. 그냥 몸땡이 하나 달랑 가졌다. 언론은 부안 사람들의 당연한 움직임을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한다. 외부세력이 개입했다고 물타기를 시도한다. 한수원(주)이 던져주는 광고비에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교묘하게 숨긴다.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나 최소한의 정당방위를 똑 같은 폭력이라고 기사화 한다. 진실은 일방적인 매도나 기계적 중립을 깨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부안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자기 집 마당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온다거나 가족이 피해를 당해도 마냥 점잖게 중립과 인내만 강조할까?

피어라 나눔과 상생의 꽃
부안사람들은 부나 권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몰매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천민 자본주의의 주인은 자본인데도 나눔과 정의가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 속에서 살아왔다.
부안 사람들의 생활에는 나눔과 핵정책을 변화시켜 한국을 살리려는 상생의 꿈이 넘친다.
꽃샘추위에도 피어나는 아름다운 변산바람꽃 같은 구속자 아내의 가슴 아린 편지를 소개하면서 글을 놓는다.
"평생 잊을 수 없을 이 여름도 빛을 바래갑니다. 이 여름의 끝에 이 싸움의 끝도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요. 며칠 못들어 올지도 모른다며, 고장난 형광등 달아주고, 아이들 한번씩 안아주고, 옷가지 챙겨 나가길래 내심 맘은 불안했지만 성당에 잘 있겠거니, 스스로 위로했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수배자와 구속자가 생겨나야,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어야 우리의 소박한 꿈인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런지요.
잠깐이지만 오늘은 영상에 담긴 당신 모습, 그리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에서 싸울테니 열심히 싸워달라며 당부하며 웃던 모습이 가슴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