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여명 학생 '핵폐기장 백지화될 때까지' 등교거부 선포
부안의 학생들이 학습권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섰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철회를 위한 어른들의 투쟁에 자신들도 목소리를 내겠다며 나선 것이다.
부안지역 학생·학부모의 등교거부는 각 학교 운영위원회와 학부모 총회, 학생회장단 회의 등을 거쳐 결정됐으며 25일 현재 부안지역 50개 학교 9천여명 중 30개 학교 약 4천여명이 등교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26일부터는 고등학생까지 결합할 예정이어서 그 수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핵폐기장 없앨려고 나왔어요"
등교거부 첫날인 25일 오후 2시 학생과 학부모 5천여 명은 반핵 민주광장이라 불리는 부안읍내 수협 앞 광장에서 '등교거부 학생·학부모 선포식'를 가졌다.
선포식에 나온 학부모 최은영 씨는 "아이들 공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오죽하면 등교거부까지 하겠냐"며 "이렇게 만든 정부가 야속하다"며 정부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다.
부안 동초등학교에 자녀를 둔 학부모 최가화 씨는 "처음엔 아이들까지 힘들게 하는가 싶어 고민을 많이 했으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도 좋은 교육일 거라 생각하게 됐다"며 등교거부를 결정하기까지 심정을 얘기했다.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표정은 밝고 씩씩했다. 부모님 몰래 나와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부안여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어른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싸우는데 우리도 가만있으면 안될 것 같아 동참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격포초등학교 3학년 최준호 학생은 "핵폐기장 없앨려고 나왔다"면서 "학교 안가는 대신 반대시위 하러 나올 거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동북초등학교 5학년 김성주 학생은 "제발 핵폐기장 막아줬으면 좋겠어요"라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선포식에 나온 초등학생들이 대체로 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반면 중·고등학생들은 같은 학교 친구들과 조직적으로 참여한 듯 보였다. 부안여중 학생들은 "친구들과 메신저와 이메일을 통해 피켓을 만들어오기로 했다"고 피켓을 자랑스레 내밀며 "학교 나가지 않는 동안 반대 시위에 항상 나올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등교거부 투쟁을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어른들의 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기자가 말하자 이들은 "우리도 생각할 줄 안다"며 "싫으면 안나왔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진짜로 우릴 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현장에서 민주주의 배울 것"
한편 이날 선포식을 시작으로 매일 오전 10시 수협 앞 광장에는 등교거부에 참여하는 학생·학부모 대회가 열린다. 부안 반핵대책위와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 수업을 빠지는 대신 반핵 글짓기, 그림 그리기, 토론 마당 등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학생들은 ▲등교거부 기간 동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 적극 동참하고 핵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고 ▲다음,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사이트를 매일 방문하여 반핵 활동에 참여하는 등 '등교거부에 임하는 우리의 행동지침'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핵폐기장 유치가 철회되는 날, 친구들의 손을 맞잡고 해맑은 웃음으로 학교를 향해 달려나가겠다며 스스로 학습권 까지 포기하고 반핵투쟁에 나선 어린 학생들에게 정부는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김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