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인다."
교과서와는 동떨어진 현실
부안 청소년들의 등교 거부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등교거부 선포식’을 시작으로 2일 현재 9일째 무기한 등교 거부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0일 현재 부안군 내 46개 초·중·고등학교 1만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88.5%(휴업 13개교 포함)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진학을 앞두고 있는 3학년 학생들을 감안하면 이보다 많은 학생들이 등교 거부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등교 거부 운동이 시작되자 “학생을 볼모로 삼지 말라”는 점잖은 훈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와 행정자치부장관에 이어 교육부총리가 부안을 다녀갔다. 30일 이 지역을 방문한 윤덕홍 부총리는 “교육은 정치, 사회 문제와 구분돼야 한다”면서 “교육을 볼모로 한 투쟁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과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부안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당할지 모를 불이익에 애를 태우고 울먹이면서도 등교 거부를 선택하게 된 절박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아이를 볼모로 학부모들이 싸우는 게 아니다. 밀실행정과 폭압만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의 부안 현실이 학교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나 윤리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안 백산고등학교 정재철 교사는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싶고 학부모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부모가 구속·수배·부상을 당하는 현실에서 교육계가 오히려 학생들을 위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부안은 왜 민주주의 안하나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볼모로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관료들은 청소년들을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규정해 버린다. 보수적 행정·교육관료들은 등교 거부 운동이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총회는 물론이고 학생들 스스로 학생총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 또한 애써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다양한 문화행사와 의견 발표를 통해 핵반대 운동에 자신들도 역할을 하겠다고 꾸준히 밝혀왔고 역할을 해왔다. 핵폐기장 유치 반대 운동과 등교 거부 운동이 오히려 이들 청소년들에게는 민주주의의 학교였던 셈이다.
한 초등학생은 윤부총리에게 “어른들은 민주주의 얘기하는데 부안은 왜 민주주의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어른들의 생존권과 무관하게 “내 미래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등교거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정희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부안 군민의 한 사람인데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핵폐기장 유치 결정을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우리한테 한 마디 안 물어봤다."
'교육과 정치는 따로'라고 주장하는 관료들은 학생들에게 사고를 정지하라고 강요한다. 그저 어른들이 하는대로 지켜보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부안의 청소년들은 다른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윤부총리와 행정·교육관료들은 그 점을 이번 기회에 알아두어야 한다.
부안의 주민과 학생들이 등교 거부 운동과 함께 스스로 ‘반핵민주학교’를 열었다. 이야말로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깨끗한 환경을 생각하며, 책임질 줄 알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는”(『어린이·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29조)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문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