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WTO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
농민운동가 고 이경해씨의 죽음을 낳았던 WTO(세계무역기구) 5차 각료회의가 공동선언문 채택에 실패하고 폐막했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이번 WTO 제5차 각료회의는 도하개발의제 출범을 위한 협상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구)에 이어 95년 출범한 이래 세계 민중들에게 배제와 불평등을 가속화해온 WTO가 자유무역체제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도하개발의제는 농업협정(AoA), 서비스협정(GATs),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골자로 한다.
WTO 제5차 각료회의에서 최대의 관심사였던 농업협정(AoA)에서는 △관세 대폭인하 △수출보조금 폐지 △국내보조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구나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은 5%이하의 저관세 적용을 담고있는데 대부분의 농산품관세가 100%를 넘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는 전면적인 농업개방을 요구하는 것과 같고 농민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농업보조금의 90%가 쌀에 지원되는 상황에서 특정품목에 보조금을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국내보조 감축은 농민에게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은 WTO 협상에서 농업분야를 제외할 것, 농업보호협상을 시도할 것,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 것 등을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이번 각료회의의 무산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던 한국의 농업개방 문제는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이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정도일 뿐이다. 이미 WTO 대다수 회원국들이 한국의 농업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더구나 미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국가간 개별협상과 지역별 무역협상을 해나갈 것이라 밝혀 끊임없이 시장개방 압력을 가해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제껏 보여준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제까지 "국제적 대세"라며 농민을 살리는 농업정책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서비스 협상에서의 발빠른 양허안 제출 등 WTO의 일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번 각료회의가 결렬로 마무리되자 전농 전북도연맹(의장 김용호)은 15일 성명을 통해 "그 동안의 정부의 모습은 선진국과 농산물 수출국의 협상일정에는 충실히 따르면서 농민들의 주장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자세였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노총 전북본부(본부장 염경석)도 성명을 발표하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인한 국내 농산물 가격폭락과 농가부채의 악순환으로 자살하는 농민들이 늘고 있고 결국은 이경해씨를 죽음으로 몰았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이 '농업개방은 대세'라며 WTO의 음모에 동참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반민중적 WTO 협상을 거부하고 민중의 삶과 생존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임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