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내세운 전쟁 독려에 굴종해선 안된다 !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 10여개 국가에 이라크로 파병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 나라는 소위 미국의 '동맹'국가들이다. 미국이 각국에 자신의 '동맹국가'임을 과시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미국자본이 생산한 오래된 무기를 팔아치워 군수자본의 잉여이윤을 올릴 때와 경제원조를 빌미로 주변국으로 자본과 상품시장을 확장하려 할 때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얼핏 경제지원의 두 가지 형태로만 보이지만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기로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유무형의 전쟁, 그것도 자본을 위한 전쟁이다. 미국이 파병을 요구한 나라들이 미국의 주요 무기 수출국이라는 사실과 세계 2위의 석유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에 지난 봄 프랑스와 독일 중국 등이 석유 이권을 미국기업에 뺏기게 되자 파병을 반대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총구에서 평화의 꽃을 바라지 마라
이라크전쟁은 침략전쟁이다. 맞다. 테러에 대한 응징이나 예방, 미국의 말대로 대량살상무기를 색출하기 위한 공동의 행보를 위해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인 것은 제국주의적 침략전쟁과 유사하다. 명분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의 손에 달려있다. 그러니 침략전쟁의 명분이 사라졌다 아니다는 논란은 모순에 가깝다. 침략이 곧 명분이고 정당성이다. 즉, 모든 전쟁에는 침략자들의 정당성과 명분이 있었고 그것이 때로는 '대세'로, '동맹국에 대한 예의'로, '국가안보' 등의 이름으로 변질되어 왔을 뿐이다. 정당성과 안보는 한 몸이다.
특히 파병부대 성격에 대해 특전사, 특공여단, 수색대대 등 전천후 인간병기로 구성된다는 것과 그 규모가 1만여명을 웃돌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의료·공병 부대는 괜찮고 전투병력은 안된다'는 식의 논리는 명분론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안보·국익 환상의 창궐
지난 봄, 전쟁은 반대하되 파병은 찬성한다는 여론은 국가안보와 남북의 대치현실(대남위협)을 앞세워 파병을 찬성해 온 정치인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작품이면서 여전히 북한을 '적국(敵國)'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 일이었다. 부대를 파견하는 문제는 국가기구로서 국가예산을 집행해 전쟁을 지원하는 문제다. 우리 국민의 의무로 납부한 세금이 이라크의 생명을 살리는데 투여되는 게 아니라 이라크에서 미국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니 우리가 부시의 시민이라도 되어야 할 것만 같다.

노무현, 자승자박 선택할까?
10월에 있을 한미연례안보회의(SCM)때 럼스펠트 국방장관 방한에서 결론지어질 예정이다. 이번 파병에 대한 정치적 선택은 북핵포기와 경제지원 빌미로 북한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하려는 미국을 추종할 것이냐, 아니면 자국의 국민을 미국 종속 아래 두고 북·미 간 흥정을 통해 얻는 떡고물-군수재벌의 자본과 금융자본의 획득-에 매달릴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부시가 내년 재집권을 향한 보수진영의 재편과 국제질서에서 유럽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제3세계에서의 미국(정권)의 지위에 타격을 가져올 것이 예상되는 부시정권의 위기를 남한이 파병에 응답해 그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노무현 정부 역시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노무현 정부는 위기의 부시정권이 자신의 거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