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대테러센터' 둬 권한 한층 확대
"조직 개혁방향에 역행, 결코 용납될 수 없어"

지난해 입법이 무산됐던 테러방지법을 민주당과 국정원이 다시 추진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18일 국회 정보위 김덕규 위원장(민주당)이 "심의를 중단해 온 테러방지법안을 새로 수정해 올 정기국회 안에 입법 처리하도록 추진 중"이라고 밝힌 데 이어, 정보위는 한 달 뒤인 9월 18일에는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여야가 협의중이며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중순 이후 법안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마련하고 국정원과 협의를 거친 이 법 수정안은 총 15개조와 부칙 2조로 구성돼 있다. 법안은 항공기의 불법납치 억제 협약, 핵물질 방호 협약 등 9개 국제협약이 규정한 범죄를 '테러'로 규정하고, 유엔 지정 테러단체 또는 이 단체와 연계된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등 '테러'와 '테러단체' 개념 규정을 좀 더 명확히 했다. 대테러활동에 동원된 군병력의 불심검문·보호조치 등 권한 부여에 관한 규정은 인권침해 논란을 빚었던 내용으로 수정안에서는 삭제됐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내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해 관계기관의 대테러활동을 총괄적으로 기획·지도·조정하도록 함으로써 국정원의 위상을 강화하는 테러방지법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군대를 국내 치안유지활동에 동원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원안과 변함없는 내용이다. 또한 대테러센터의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함으로써 국가정보원의 수사권 확대가 불가피하게 된다. 이밖에 감청 및 통신 제한 사유의 확대, 외국인에 대한 사찰활동 등을 가능케 하는 조항들 또한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강하게 예고하고 있다.
민중연대를 비롯한 인권·사회단체들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공동행동'을 조직해 즉각 저지에 나섰다. 공동행동은 9월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테러센터가 설치된다면 통제받지 않는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테러의 예방 및 대응 활동은 물론 그밖의 '위기관리'에서 주도적 지위를 행사할 가능성이 생긴다"며 "당장 우리에게는 안보 유지 및 테러 대응 활동을 위한 현존 체제를 인권 기준에 맞도록 민주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열린 사회단체 토론회에서 울산대 이계수 교수(법학)는 "테러방지법은 사실상 대테러센터의 조직 및 권한에 관한 법률"이라면서 "대테러센터가 법률에 의해 설치된다면 국정원은 조직개편 논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독립적인 조직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국정원 조직 개편(개혁) 요구에 대한 일종의 적극적인 사전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9·11 이후 각국의 반테러조치와 법제 강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반테러국제연대'의 압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테러방지법 제정이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을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의 비밀정보기관은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과 달리 경찰권한(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어 말그대로 비밀경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안이 끝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오랜 피와 땀을 통해 성취한 현 수준의 민주주의와 인권마저도 후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수사권 폐지, 해외정보처로의 기능 축소, 국회 등 외부기관에 의한 통제 강화 등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다시금 모아내야 할 것이다. [문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