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은...우리 자신의 인권까지 말살한다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17, 18일 이틀간 한국에 온다.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 참석하는 형식이지만, 속 내용은 조영길 국방부장관과 노무현을 만나 이라크 추가파병을 확답받으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5∼6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 이라크 추가파병 협의에서 한국에 5000명선의 전투병 파병을 요구한 바 있다.

360여개 국내 사회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는 <이라크파병 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지난 11일, 럼스펠드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천명했다. 비상국민행동은 미국이 한국과 함께 대규모 파병을 요구했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일찌감치 파병 거부 의사를 밝혔고, 터키 역시 지난 7일 파병 결정을 철회했음을 상기시켰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군사적 지원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근 이라크 내 저항세력의 게릴라식 공격과 무차별 테러가 갈수록 격화되면서 자국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라크인들의 저항 공격이 하루 25-30건씩 일어나고 있고, 비전투병들이라고 이런 위험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제민주연대 등 국내 인권단체들의 초청으로 지난 5일 방한한 국제행동센터(International Action Center)의 공동 사무국장 새라 플라운더스 씨는, "미국은 이라크전에 대한 국내 반대 운동이 거세어지자 이를 모면하려고 각국에 파병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내에서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플라운더스 씨는 계속한다. "의회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된 '애국자법'은 수많은 외국인을 추방하고 도청, 감시모니터 설치, 의료·신용카드 기록 조회 등 모든 것을 국가가 감시할 수 있게 했습니다. 평화운동단체들은 집기를 빼앗기고 자금이 동결되어 문을 닫고 있고, 심지어 도서관의 대출 내역까지 국가에 보고해야 합니다."

인권탄압의 악명을 떨쳐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정보원이 테러방지법 제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정원은 지난 2001년에 월드컵을 핑계삼아 졸속으로 입법하려 했다가 국민적 저항으로 무산되었던 테러방지법을 최근 파병정국을 틈타 다시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세계의 수많은 인권단체들이 '인권과 반테러 문제에 관한 국제 감독 메커니즘의 필요성에 관한 공동 선언'을 채택해, 반테러조치라는 명목으로 '고문 또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와 처벌'의 합법화 등을 우려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고문을 합법화하자는 소름 돋는 이야기가 부시 정부의 핵심 수뇌부들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시민권과 인권, 기본적 노동권, 그리고 생명권 침해 방지를 위한 기본적 보호장치들을 돌이킬 수 없이 제거하게 될 위태로운 상황으로 우리 자신을 몰아넣게 될 것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세력이 이라크 파병 결정 철회 운동을 더욱 더 강력하게 벌여나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