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기고: 이경미)

[편집자주: 부안 토박이 주민 이경미씨가 부안군수의 핵폐기장 유치 신청 이후 자신과 주변의 변화된 삶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유린당한 삶이 믿기지 않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한 줌 핵마피아들'의 손으로부터 생명과 미래를 지켜낼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내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일제시대로 잠깐 되돌아 간 건 아닐까? 어떤 아저씨는 그때보다 더하다고 하신다.
문득 문득 지금 이런 상황들이 정말로 내 앞에 있는 현실이 맞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전경 군화발에 밟힌 엉덩이의 통증이, 전경의 곤봉에 찍힌 어깨의 통증이, 전경 방패로 맞은 뒷목의 통증이, 그들에 의해 부러져버린 내 앞니가, 가는 곳마다 길을 가로막는 전경들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7월 9일부터 아이들과 우리는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몸은 아무리 피곤해도 잠은 쉽게 들지 않고 너무도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홧병이 되어버릴 것 같다.

날마다 날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나의, 내 가족의, 부안 군민들의 삶이 이렇게 철저하게 짓밟히고 유린당할 수도 있는 것인지, 이것이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는지 날마다 날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자신들의 오만한 독선과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전경들을 앞세워 부안 군민의 의지 표현인 깃발, 플래카드 다 떼어내고, 담벼락 글씨도 다 지우고, 심지어 저녁만 되면 부안 읍내는 사람들이 모일 수도, 노란 옷을 입고 다닐 수도 없게 한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전경들의 폭력과 폭언.
며칠 전 초등학교를 지나치다 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이들은 분명 '광주출정가'를 개사한 '반핵출정가'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안의 아이들은 이미 투쟁가가 익숙해 있었다.
동요를 불러야 할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반핵출정가'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때려잡자 김종규'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핵종규!', '노무현!'이라고 불러대고 통쾌해하는 아이들, 부안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전경놀이

그 아이들 눈에 김종규와 노무현, 전경은 부안 사람 최대의 적이 되어있다. 그러면서도 놀이는 날마다 전경놀이다.
큰 아이는 언제쯤이면 유치원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아니 유치원에 가지 않더라도 좋으니 밤이 되면 더 이상 하늘 지붕삼아 찬서리 맞으며 길바닥에서 잠들지 않고 집에서 편히 잠재워 볼 수 있을지. 예전처럼 온 가족이 손잡고 산책도 다닐 수 있을지. 올해는 못 지은 농사, 내년에는 지을 수 있을지.
정치가 바로 서지 못하면 백성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을 부안 군민들은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 생명과 미래는 우리가 지킨다

이미 굴업도 핵폐기장 백지화 발표할 때 부적격지역으로 판정이 났던 위도가 김종규가 독단적으로 신청함으로써 적합지역으로 둔갑하고, 군 의회에서 부결된 내용을 무시하고 김종규가 독단적으로 신청함으로써 '자율유치 공모방식'에 문제 없다 하고, 온갖 매수와 패륜적인 공작을 저지르는 한수원과 정부의 방법들은 국책사업을 끌어가기 위한 정당한 절차가 되는 기막힌 현실.
하지만 생업을 포기해가며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부안 군민들에 의해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 줌 핵마피아들의 손에 우리의 생명과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미래,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