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내기 - 어떤 방면에 처음으로 나서서 아직 익숙하지 못한 사람

인권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해온지 8달이 되어가면서도 나는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까맣게 어두운 세상을 한 발짝 두 발짝 두려움을 가득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단체의 활동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개인적인 이유가 전부였기에 나는 넓게는 인권단체활동의 현실 좁게는 다니는 단체의 현실에서 생각과는 다른 많은 상황들을 접하게 됐고 점점 내가 그려왔던 조각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클어져 본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게 변화의 기회가 왔다. 평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으로 평화운동, 반전운동의 접전지가 되어있는 평택에 인권단체의 이름을 가지고 2006년 3월을 평택에서 지내게 되었다. 두 번 정도 평택의 촛불집회에 참여해 봤고 󰡐평화바람󰡑이라는 곳에 아는 이름 두세명 내가 일하는 단체 출신의 활동가가 두세명있다 라는 것, 미군기지로 이용할 수 있는 땅 349만평을 요구하고 있고 349만평에 속하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이를 반대하고있다 라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던데 그래서 일까 나 스스로도 나를 얼마나 아는 가를 의심하고 있는 나의 정신적 공황 상태와 평택 대추리를 넘겨 집는 수준의 사전정보를 알고 있는 나는 대추리의 초반러쉬에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무엇인지 모를 서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초반러쉬라니 막상 쓰고 보니 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단순했다. 3월 6일 사태 발생 이틀 전 대추리 상상 할 수 있겠는가? 모두에 눈에서 긴장감이 쏟아져 나오고, 누가 살짝 건들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반격할 반사신경을 이백프로는 열어 놓은 것 같은 자세에서 한 달 동안 머물겠다하며 찾아온 활동가는 반가움도 있지만 부담감 또한 배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지킴이가 어디서 지내야 하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일일이 알려 줘야하고 서로가 확인되어야하는 일상의 사업이 일시 정지 된 급박한 상황에서의 나는 어디로 갈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나의 개인의 상황으로 갇히게 되면서 또다시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을 받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일의 시작이 우울하다보니 평택에 있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내가 여기 꼭 한 달 있어야 하는 걸까?

3월 6일 나는 평택에 한 달 동안 남기로 결심하게 된다.
대추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평택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날 새벽부터 다들 잠을 이루 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집달관과 수백의 경찰들, 아니 용역들 학교 안에서 집회를 하며 기다리는 우리들 그리고 대추초등학교 정문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학교로 들어가려면 나를 밞고 가라는 비폭력 대응을 하는 20여명의 인권활동가들이 있다. 한 달이 더 지난 일인데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따갑다.

트랙터로 이미 정문 안쪽 앞 선은 막혀져 집회를 학교 앞에서 하고 있었고, 나는 집회 장소에 다른 인권활동가들을 정문 밖에 있었던 때라 나는 앞쪽 상황이 어떤지는 사회자가 간간히 알려 주는 상황보고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나에게 평화바람의 캠코더가 주워졌고  나는 그 기회에 정문과 학교를 오가며 캠코더에 상황을 담았다.
정문 앞에서 몸으로 오직 몸 하나로 1000여명의 경찰을 막아내고 있는 20여명의 인권활동가 어쩌면 나 역시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경찰에게 학교를 지키게 해달라고, 미군에게 349만평의 땅을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고, 더 이상 농사지을 수 없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게 하냐고 울음 섞인 말을 건넸지만 경찰은 한명씩 차례로 인권활동가들을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다들 예상한 일이라며 담담해지려는 눈에는 동지에 대한 걱정을 숨길 수가 없었고 결국 정문 앞에는 끝까지 지키겠다며 손에서 피가 나고 울음과 고함 속에 더 이상 말하기가 힘들어진 인권활동가 한명만이 남겨지게 되고 그녀의 결의에 경찰은 물려 났다.

무엇을 지키는가?
그녀는 대추초등학교 앞에 왜 쇠사슬로 자신을 묶고 서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었던가?

조금 여유 있는 점심을 보내고 오후에 다시 찾아온 경찰들과 다시 접전을 벌이고 결국 경찰들은 물려났지만 인권활동가라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 같이 서 있는 다른 20여명의 활동가들의 행동을 보면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길에서 싸우고 지키는 사람들에게 나만을 생각하며 나만 챙겨 달라 때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다.

무엇을 지켜야하는가?
나는 여기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