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봄이 한가운데에서 2005년 봄의 시작까지 나는 긴 여행을 떠났었다. 무엇을 바란다거나 크게 뭔가를 이루기 위해 떠나기 보다는 󰡐여기가 아닌 낯선 곳󰡑󰡐아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을 내 삶에 끼워 넣어보고 싶었다. 25년의 시간 속에 부모와 그토록 오래 떨어져 있어본 적도 없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 본 일도 없었기에 내 안에는 즐거움과 같이 공생하는 두려움을 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첫 발걸음은 무겁고 떨어지기 힘들고 눈물만 가득 찼지만 나는 일 년을 혼자가 아닌 홀로 살아갔다. 많은 이야기가 입에서 가슴 속에서 머리 속에서 아직도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는 강렬한 조각. 그 조각들 사이에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 땅에게 기댄 적이 있다. 땅에게 기대어 먹고 사는 일은 대학시절 농활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 버티기조차 힘들고, 고되고, 지겹고, 지치는 일이었다. 땅은 나에게 끝없는 노동만을 강조하는 듯 했고, 나는 어설픈 반항의 마음으로 󰡐이건 나의 마음과 머리를 모두 정지 시키는 거야. 여기서 벗어나야해.󰡑라는 생각만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것에 제공처 이긴 했지만 나는 자연 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산업화된 현대인이었던 것이다.

땅에서 튕겨져 나온 나는 다시 돌아 가야하는 평택의 일상의 땅 지킴은 즐거운 기분일 수 없고 만약 내가 농사일에 대한 개인적 편견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평택에서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피하고만 싶은 농사를 짓겠다고 외치는 대추리 주민들.

올해도 농사짓고, 대대손손 농사짓자.

이건 주민들이 일상을 편하게 살자, 상대보다 나아보이기 위한 권력을 갖겠다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모두들 더 편히 더 높게 살아 보고자 농촌을 떠나는 지금의 일반적인 삶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그 맘은 주민들 스스로가 드넓은 갯벌을 흙을 날라 땅을 메우고 그 땅을 일구어 논을 만들고 거기에 농사지어 아들, 딸 키워내고 이젠 그들에게 땅은 󰡐땅󰡑이라는 말과 의미를 넘어서는 또 다른 자신들 인 것이다. 그런 땅을 빼앗는 것은 삶을 빼앗는 것이고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싸우는 것 지난 4주간 평택에서 내가 느낀 농사라는 것은 바로 이것 이였다.

왜,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가?
무엇을 위해, 그들을 싸우게 만드는가?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이 진정으로 보이지 않는가?

현실을 눈 감아버리고 나의 삶만을 위해 살아가고, 더 이상의 너․우리는 없어지는 200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씩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점점 살아가기 각박해지며, 고향을 잃고, 결국 내가 왜 여기에서 살아가는지 조차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만들다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갈 것이다. 내가 부정했던 옆 친구들, 이 땅에 살고 있었다라는 흔적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4주간의 평택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