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북교육청은 교육인권조례 제정이 아닌 교육주체들의 고유한 인권보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목소리 없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침묵을 강요받았거나, 듣지 않으려하기에 들리지 않게 된 자들이 있을 뿐이다.“

-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 (Arundhati Roy)

인권이 공허한 선언이 아닌 현실에서 구체적인 힘을 갖기 위해 의무 주체와 그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국제인권기구들이 제시한 국가의 인권 보장 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국가가 직접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구성원들이 인권을 누리는 데 방해요소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존중의 의무’, 국가의 인권 존중만이 아니라 제3자에 의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보호의 의무’, 그리고 인권 수준을 증진시키기 위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법률·행정·예산·사법 영역에서의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통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실현의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책무의 안정적인 시행을 위해 법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동시에 인권보장은 역사 속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개선과 분리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모두에게 생득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누군가에게는 억압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 환경과 구조 속에서 삭제되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보이게 만드는 것이 인권의 역사며 인권보장의 흐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는 여성, 소수인종, 장애인 등을 위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대한 차별의 해소와 권리 보장을 ‘역차별’로 해석할 수 없다.


전북지역 학생인권 보장은 충분한가?
현행법 체계에서 학생 인권은 그저 선언적 문구로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기본법 12조는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초·중등교육법 18조의 4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여 법체계 내에도 학생의 인권보장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권리 보장의 내용이 아닌 추상적 선언이기 때문에 인권보장의 법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2010년대 들어서 지역의 교육운동과 시민사회·인권운동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시민운동을 진행했다. 국가 단위의 입법과 행정의 공백을 교육자치법규를 통해 부분적으로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전북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전라북도교육청은 2007년 공문을 통해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표명했으나, 학교 현장의 체벌을 비롯한 인권침해를 근본적으로 규제할 수는 없었다. 이에 따라 전북 내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지역 교육·시민사회·인권운동은 전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를 2011년 6월에 결성하고 조례제정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이후 전북교육청에서 발의한 조례안이 도의회 상임위 부결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2013년 의회 발의를 통해 「전라북도 학생인권 조례(이하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그렇다면 전북학생인권조례 10년을 돌아보며 학생인권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점검이 <교육인권조례안> 제정 과정에 앞서 우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전북교육청 차원에서 <교육인권조례안> 제정과정 안에서 학생인권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북교육청은 인수위원회 시기부터 ‘학생인권에 집중한 나머지, 교직원 인권, 수업권, 학생생활 지도권은 위축되지 않았나 엄중히 살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전북교육청 교육인권조례안의 배경에 대해서도 학생인권만 보호하는 ‘학생인권조례’를 넘어서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북지역 학생인권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전북교육청이 학생인권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선험적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일례로 전국단위의 조사결과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2021년 11월, 17개 시·도교육청에 관내 학교의 학칙에 주요한 학생인권 침해 내용이 있는지, 있다면 해당 학교가 얼마나 많은지, 이런 문제의 개선을 위한 계획 등을 질의했다. 해당 질의 결과를 보면 전북 지역보다 앞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타 시도교육청에 비해 특정 학생인권의 내용이 전북내의 좀 더 많은 학교의 학교생활규정에 반영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중 생활규정 내에 두발규제 조항이 있는 학교의 수만 288개교에 이르고 치마교복만을 강제하는 학교가 130개교에 달하는 등 전북도내 가장 기본적인 인권영역인 신체의 자유, 개성실현의 자유 실현이 상당히 미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조례를 통해 학생인권보장이 과도할 정도로 잘 되고 있다는 일부의 통념과 다르게 학생인권보장과 인권친화적 학교 현장을 위한 정책과 과제는 앞으로도 보완·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조례에 따라 교육체계 내에서 학생인권 침해 및 차별사건을 사안에 따라 조사하고 심의하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 생활규정개정 컨설팅 과정 등의 인권보장 행정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본조례가 학생인권보장에 있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학교생활규정에 대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전국 시·도교육청 2021년 질의 결과

‘학생인권 VS 교권’의 잘못된 제로섬 구도가 만들어내는 오류.

전북교육청은 교원의 인권 중에서도 '교권 보호' 내용을 교육인권조례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권을 명시한 조례에서 교육활동 침해를 인권침해로 규범화하는 것은 통념적으로 교권(敎勸)이라는 말이 ‘교사의 가르칠 권리’로 이해되고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례 등을 참고하면 교원의 교권은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부터 유래된 직무상의 권한1)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활동에 따른 직무상의 권한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서 인정하는 인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봐야 하며, 이에 따라 인권제도의 권리구제 절차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다른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교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구도 역시 문제다. 이는 교사의 역할을 학생의 학습권 보장으로만 제한하여 인권의 옹호자로서 교원이 살펴야 할 학생의 다른 권리들인 휴식의 권리, 놀 권리, 개성 실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 및 종교의 자유 등을 대상화하는 위험성이 있다. 교사는 학교 내에서 학생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이 같은 다양한 권리들이 보장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학습권 외의 학생의 다양한 권리를 주변화하고 이 권리들의 향유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도록 하는 구도는 구시대적인 퇴행일 수밖에 없다. 교원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가르칠 ‘권리’라고 규정한다면 부정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권리 규정은 교원은 가르칠 때에만 권리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여 교육활동 행위라는 노동권을 보장을 어렵게 하고, 오히려 교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내적 태도를 갖도록 하는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원에게 야간학습업무·보충수업과 같은 교과시간 외의 장시간 노동이나,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에 대한 전적인 생활지도 책임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교육행위가 ‘가르칠 권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수록, 교원의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는 당연한 사회적 전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노동강도 완화를 위해 고된 투쟁을 이어오고 있음을 감안하면 교권의 강화는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하는 일이 될 뿐이다.

학생인권은 폭력과 차별, 특권과 배제의 대상이었던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재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인권을 한 사람이 얻으면 다른 사람은 반드시 그만큼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의 관계로 보는 관점에는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을 비롯한 사회 일부에서 학생인권과 교사의 권리가 상충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러한 관점을 일부 수용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제로섬 게임의 관점에서 학생인권의 반대편에 교권이 놓는다면, 그 교권이란 실상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권한, 차별할 권한, 학생을 배제한 채 학교를 운영할 권한’이라는 기이한 구조가 될 것이다. 더구나 현재 「교육활동보호특별법」, 「전북교육활동보호조례」를 통해 교육활동 권한 보장을 위한 법규가 있는 반면, 학생인권은 추상적 선언인 법 조항 정도에 그치면서 교육자치의 차원에서 조례가 조례가 제정된 점도 살펴봐야 한다.

그렇기에 교권의 핵심은 학생에 대한 통제와 규율을 강제하는 권위주의적 지도권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국가(또는 관리자)의 통제로부터 교육의 자유를 지킬 권리, 그리고 학생에 맞는 지원책을 찾아내고 국가에 대해 그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 읽혀져야 한다. 또한 이러한 교권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보장받는 것은 학생인권의 기준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생활규정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학교에서 학생이 소수자 비하 발언·폭언 등 혐오폭력을 일으킬 때, 교원이 학칙에 따른 생활지도를 한다면 교육행위 역시 정당성을 보장받을 것이다.

2023년 1월 전북학생인권조례 개악안 중단 촉구 기자회견

누구의 권리도 명시화하지 못하게 되는 조례가 된다면?

전북교육청은 <교육인권조례안>에 학생, 교직원, 학부모 주체의 인권보장을 다 담겠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권보장의 내용은 생략되거나 누락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인권행정을 규율하는 인권조례의 경우는 모든 주민을 포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학생의 위치성에 대해 먼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 주체의 인권을 모두 보장하는 조례안은 필연적로 문제를 갖게 되데 세 주체가 처한 구조와 관계에서 필요한 구체적 권리 내용이 있는데 모든 주체들을 포괄하려고 하니 필수적인 규정들은 명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세 주체 각자 고유하게 필요한 각각의 권리들(예를 들어 학교 관리자나 교육당국에 의한 노조활동 제한)도 명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본조례로서 인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제도화라고 말하기엔 추상적인 조례가 될 가능성이 많다. 기본조례로서 인권보장의 개념과 방향성이 불명확한 조례 제정된다면, 최소한의 권리 내용조차 없는 조례로서 실질적인 인권보장 제도로서 기능하는데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인권제도가 되기 위해선 조례만큼의 세부적인 시행세칙을 별도로 만들고, 소위원회를 둔다고 하더라도 결국 각기 다른 사안을 전부 세세하게 살펴야 상황을 일으켜 불필요한 행정력의 소모를 일으킬 것이다. 현재의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내에서 학생인권 침해사건에 대한 해결 과정도 월 1회 개최 등 적지 않은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세 주체들의 권리를 모두 다룬다고 하는 것인 과도한 규정이다.


교육인권조례 제정이 아닌 학생인권보장을 통한 인권친화적 학교가 필요하다.

지난 2020년, 미국 사회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흑인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 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약칭 BLM)' 시위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이 중요하다)'를 주장하는 일각의 슬로건이 제기되었다. 분명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고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해 더 인권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노예제를 비롯하여 ‘모든 생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미국 흑인사회의 역사와 현실의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표현으로서 비판을 받았다. 나아가 BLM 운동과 구호를 외치던 이들이 흑인의 생명만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흑인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보편 원칙도 훼손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학생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이 모든 인권을 상대화시키며 절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기간 한국의 교육 목표 안에서 삭제되어왔던 학생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인권친화적 교육의 기준이 될 것이다. 상대적 소수자인 학생의 학교와 사회구조 내의 위치에 대한 관점 속에 학생의 인권의 실현이 결국 보편의 권리와 닿아있다.

다시 정리하면 현재 파악되고 있는 교육인권조례는 각 교육구성원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심화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학생인권보장 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교육구성원의 인권보장조차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전북교육청은 <교육인권조례안>이 17개 시도교육청 중 전국 최초의 시도라는 성과에 사로잡혀 졸속적인 추진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교육 주체들의 실질적인 권리 보장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제정되어 있는 각각의 교육 구성원들의 인권 및 권한 보장을 위한 조례의 내용과 상황에 대해 면밀히 점검하고 보완하여 인권친화적인 교육과 행정을 조성해야 한다.


※ 각주
1) “학교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를 수업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법적으로는 학부모에게 속하는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신탁받은 것이고, 실정법상으로는 공교육의 책임이 있은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교사의 지위에서 생기는 학생에 대한 일차적인 교육상의 직무권한(직권)이지만, 학생의 수학권의 실현을 위하여 인정되는 것으로서 양자는 상호협력관계에 있다고 하겠으나, 수학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하나로서 보다 존중되어야 하며…….(이하 생략)” <헌법재판소 결정, 1992. 11. 12. 89헌마88>


필자 :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