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29 이태원참사를 직면한다는 것

사회적참사는 운이 없어서, 혹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점차 복잡해지고 기후위기 등 재난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여 예방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적절하게 수습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재난의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재난은 사회적참사가 된다. 씨랜드참사,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참사 등 우리는 수많은 사회적참사를 겪었다. 그리고 다시 10.29 이태원참사를 겪고 있다. 이 참사를 회피하지 말고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우리는 안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왜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경찰의 특수본 수사와 국정조사가 실시되었고, 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들을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원인 조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재발방지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책임자들이 왜 역할을 못했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인파 밀집을 예상하고도 예방대책을 세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112 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인력 부족 때문인지, 112 신고 배정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파 밀집 위험을 가볍게 취급하고 집회 등 다른 위험요인에만 집중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우리는 왜 희생자를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는지, 피해자의 권리는 왜 보장되지 않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손 한 번 잡아볼 수도 없었다. 희생자들은 거주지와 상관 없이 여러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들을 수 없었다. 정부는 ‘참사’를 ‘사고’라고 불렀고 ‘희생자’는 ‘사망자’로 호명했다. 유가족들이 서로 모이고자 했으나 서울시와 정부는 협조하지 않았다. 사회적참사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제대로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은 고통 속에 놓인 공동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고통 속에 놓여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사회적참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무를 정부가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 특별법은, 늦었지만 이태원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하게 하려는 것이다. 특별법에는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희생자를 공적으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 공동체 회복을 위한 공간 조성과 기록 보존, 교육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사회적참사가 발생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 법률규정이 없기에 부득이 특별법의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다.

이 특별법을 통해 10.29 이태원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야 한다. 과오를 저지른 몇몇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관행을 살펴보면서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피해자 권리 보장은,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며 사회적참사는 정부의 책임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디디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돌아보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만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 특별법이 통과되면 그에 따라 조사위원회가 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정부가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에 사회적참사의 해결 과제를 모두 떠맡기지 말고,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해야 한다. 진상규명에 시민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고, 애도와 추모, 그리고 기억과 기록에 함께해야 한다. 사회적인 위험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력도 키워야 한다. 생명·안전이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가 되도록 싸워야 한다. 위험에 대해 알 권리와 예방 및 대응에 참여할 권리,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와 피해자 권리보장 등이 당연한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PPT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얼굴 사진.
김혜진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하고,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