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 ‘다음 소희’가 담지 못한 현실

▲ 영화 '다음 소희' 포스터

시작은 다른 지역의 활동가가 문자로 보내준 한 기사의 링크였다. 지역 언론에 실린 짧은 단신 기사였다.

“A양은 최근 학교에서 한 회사 고객서비스센터에서 실습을 나갔으며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저수지서 발견된 여성 여고생, 자살 추정」, 전라일보 (2017년 1월 24일)

학교도, 이름도 모르는 채로 자초지종을 알아보러 무턱대고 전주 시내 특성화고들에 전화를 걸었다. 민주노총 상근자임을 밝히고 사망한 학생이 일한 업체가 어디인지 물었다. 다들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너덧번째 쯤 통화였을까,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는 특성화고 파견형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이 전국적으로 넓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전북에서도 현장실습 운영 현황을 안건으로 교육청과 정책협의를 하는 등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각 학교에서 어떤 업체로 몇 명씩 실습을 보냈는지 기초 자료를 마련해 놓았었다. 그렇게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즉 LB휴넷을 특정할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확인했을 때 이것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겠구나 직감했다. LB휴넷은 2014년 10월에 팀장으로 일하던 고 이문수 님이 여러 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던 곳이다. <다음 소희> 영화에 담긴 콜센터의 현실이 유서에 적혀 있었다. 단순 문의 고객에게도 상품판매를 강요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강제로 야근을 시켰다. 그러나 추가 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이미지 내용 : 또한, 근로자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휴대폰 가입을 권유하여 가입실적을 내면 엘비휴넷(주)이 아닌 LG U+로부터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근무시간 이후 가입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통화를 하는 정우도 있어 단지 '녹취 뷰어상 개인별 콜 현황'만으로 18:00이후의 통화부분에 대해 근로자들이 연장근로를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
▲ 사건번호 2015년형제15159호 불기소결정서 중에서

당시 희망연대노조와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회사와 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여러 차례 집회를 개최했다. 고용노동부는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LB휴넷 노동자들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장근무를 했고 인센티브는 원청인 유플러스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임금체불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이 황당하고 기막힌 결론 때문에도 회사 이름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사건을 인지한 이후부터 전말을 파악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희망연대노조와 함께 본격적으로 전주고객센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이야기와 자료를 모아갔다. 희망연대노조에는 통신업체 하청 노동자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다. 노동자 간 경쟁과 원청의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통신업계의 원하청 구조의 작동원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동조합이다. 희망연대노조에는 유플러스 비정규직 조합원도 많다. 홍수연 님과 소속된 하청업체는 달랐지만,  홍수연 님이 상담한 고객의 상품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했을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故 홍수연 님이 일한 부서가 SAVE부서, 일명 해지방어부서라는 사실을 파악해주었다. 상품을 해지하기로 마음먹은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만큼 업무강도가 높아 경력자들도 기피하는 부서라고 했다.

이미지 내용 : 심지어 개인 휴대폰으로 통화하여 터무니없는 상품금액이나 내용들을 안내하고 고객은 가입후 나중에 문제를 삼으려해도 상담사쪽은 그런 적 없다 발뺌하면 그만입니다. 위에서도 이런걸 알면서 일단 가입시켰으니 다 눈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만 급증하는거구요. 거대한 사기꾼 집단과 같습니다.  상담사들 근무시간은 "녹취뷰어'로 확인 해 보시면됩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은채 로그아웃된 상태로 TM을 진행 하니까요. 그래야 근무를 하지 않은걸로 시스템상 기록이 되어 로그인시간으로만 임금을 지급해 줍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보면 고객에게 사기치는 이 집단의 부조리가 더 많을 겁니다. 철저한 조사와 담당자 처벌, 진상규명 부탁드립니다. LG U+는 전주센터 뿐아니라 서울에 있는 센터와 부산에 있는센터. 이 세곳을 모두 조사 하여야 합니다. 위내용이 세곳의 센터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내용이니까요.
▲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재직 중 사망한 고 이문수 님의 유서

수소문해서 만난 회사 재직자와 퇴직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故 이문수 님이 남긴 유서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故 홍수연 님도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했고, 시간 외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 국회의원실을 통해 LB휴넷 상담사들의 평균근속이 0.8년에 불과했다. 이런 곳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고? 아찔했다. 

어렵사리 유족의 연락처를 전달받아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사건을 알게 된 후 대략 한 달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유족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회사의 설명에 의구심을 갖고 고 홍수연 님의 출퇴근 기록과 예금거래내역을 모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산재 피해자 가족들이 종종 경험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던 데 대한 죄책감에 둘러싸여 있었다.

3월 7일에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고 서울에서도 대책회의가 결성되었다. 이후의 전개는 영화와 비슷하다. 학교와 교육청은 모른 척했고, 원청과 하청업체도 모른 척 했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을 대응하며 늘상 울분에 차 있었다. 그 중 털이 곤두서도록 화가 났던 순간이 몇 장면 있다.

이미지 설명 : 촛불을 들고 집회 중인 사람들이 '헤드셋 내려놓고 편히 쉬기를', '성폭력 언어폭력, 무조건 견디라고요? NO! 우리는 인간입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2017년 3월 31일 회사 앞, 추모 문화제

첫 번째는 사건을 뭉개려 하던 교육청의 모습이었다. 나는 홍수연 님이 어느 회사로 실습을 나갔었는지 확인한 뒤 현장실습 문제로 평소 연락을 주고받던 교육청의 직업교육 담당 장학사에게 연락했다. 현장실습 중이던 학생이 죽었고, 단순 자살이 아닐 수 있으니 유가족을 만나 사정을 듣고 같은 회사에 실습을 나간 다른 학생들도 만나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모래알 찾듯, 자그마한 실마리 하나라도 찾기 위해 매달려 어렵사리 유족을 만나게 되기까지, 교육청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족을 만나 교육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치솟는 화를 누를 수가 없었다. 공대위가 출범한 뒤 교육청은 그때야 LB휴넷으로 실습을 나갔던 졸업생들과 고 홍수연님의 친구를 면담했다. 졸업생들은 “멘탈이 무너진다”,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들 힘들어하고 울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죽었음에도 이를 들추지 않고 무마하고 싶었던 교육청의 직무유기가 유족의 시름을 더 깊고 길어지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고 홍수연 님에게 책임을 돌리던 회사의 뻔뻔함이었다. 공대위가 출범한 다음 날, 회사는 기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회사는 실적 강요는 없었고, 실습생들은 연장근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간담회는 거짓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에 그려지듯, 홍수연 님은 동료와 싸우기도 했고 자살 시도도 있었다. 회사는 이런 홍수연 님의 사생활을 기자들에게 거론하며 죽음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직자들도 회사가 홍수연 님에 대한 악소문을 퍼트리고 있다고 제보해왔다. 얼마나 악한 마음을 먹어야 이같이 파렴치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악한 마음을 마주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도 어둠에 물들게 하는 끔찍한 일이었다. 사건을 마무리하며 회사가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과 별개로 고인을 모욕한 행위에 대해 유족에게 대면 사과하도록 했지만 진심으로 사과했을지는 모르겠다. 앞장서서 고인의 사생활을 들추고 악소문을 퍼트렸던 사람은 몇 년이 지나서도 센터의 관리자직을 맡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회사와의 교섭 자리다. 사건이 공론화된 뒤 다시 한 달여 시간이 지나고, 원청 유플러스는 참여하지 않은 채 교섭이 열렸다. 교섭에 참석한 하청업체 LB휴넷은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공대위에서 내용을 달라는 식이었다. 꾹꾹 눌러 참던 울화가 터져버려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구걸하러 온 게 아니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회사에 연좌하며 항의 행동에 나섰다. 회사가 교섭에 나와서도 입을 꾹 닫고 있던 이유는 진짜 결정권은 원청에 있기 때문이었다. 교섭에서 좁혀진 의견은 회사 임원의, 더 정확히는 원청의 검토를 거쳐 수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청은 끝까지 공식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미지 설명 : 촛불과 피켓을 든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 2017년 3월 17일 회사 앞, 고 홍수연님 추모 문화제

난 세상에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람을 향한 공감과 연민, 애정이 모든 일의 발단과 동력이 된다. 희망연대노조의 2014년 투쟁이 없었다면,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에 맞서 싸워온 활동가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홍수연 님의 사건은 드러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공대위, 대책회의에 함께했던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셨다. 이 외에도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여러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용기 내어 나섰던 내부고발자들이 있었다. 한 분은 회사가 홍수연 님에 대한 악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상파 3사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사건이 다뤄졌다. 그 중 KBS 추적60분은 통신업체 콜센터의 원하청 구조를 깊숙하게 탐사보도했다. 방송 내용은 이후 대응 과정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에도 끈기 있게 취재를 마무리 짓던 제작진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고 이문수 님의 아버님도 굳건하게 연대해주셨다. 영화에서는 이문수 님 유족이 회사와 합의한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과 다르다. 아버님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셨고 홍수연 님 추모문화제에도 참석하셨다. 아버님은 뒤늦게 산재를 신청해 2019년이 되어서야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홍수연 님의 시신이 발견된 날, 신원미상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여러 보도가 있었다. 읽었더라도 무심히 흘려보냈을 기사들이었다. 신원미상의 어떤 이가 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이었음을, 그이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했음을 담은 후속 보도는 단 한 건이었다. 전라일보 하미수 기자의 보도였다. 그 보도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미지 설명 : 두 명의 사람이 집회 무대에 서 있다.
▲ 고 이문수 님의 아버님은 추모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홍수연 님의 유족을 위로했다. (2017.3.17. 회사 앞 추모 문화제. 좌: 고 이문수 님의 아버지 이종민 님, 우: 고 홍수연 님의 아버지 홍순성 님)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에게서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며 국회에서 열렸던 토론회 영상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토론회에서 내가 한 말이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정확히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발표를 마치던 그날의 감정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아마 故 홍수연 님의 죽음에는 실적 경쟁 톱니바퀴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하청노동의 문제, 인격을 파괴하는 감정노동의 문제,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문제 등 한국 사회 각종 병폐가 얽혀있다고 호소했던 것 같다. 그리고, 특성화고 진학이 갖는 사회적 낙인을 견뎌왔을 홍수연 님의 좌절을, 그래서 이곳에서마저 밀려나면 이 사회에는 더이상 나의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고 느꼈을 그 절망을 떠올려 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세상은 바뀐 것 같지만 바뀌지 않았다. 사건은 회사의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발표로 마무리되었다. 1년쯤 지난 뒤 LB휴넷의 재직자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실적 압박과 수당 없는 추가 근무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교육부는 학습과 취업을 분리한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겨울에는 제주에서 이민호 님이, 2021년 가을에는 여수에서 홍정운 님이 현장실습 중 사망했다. 2022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의 현황을 담은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그 조사연구에 참여했다. 조사 과정에서 목격한 현실 역시 5년 전과 비슷했다.

여전히 어딘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번민하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누칼협’(누가 칼들고 협박했나)과 ‘알빠노’(알 바 아니다)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쓰이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10대는 절망보다는 가능성을 품어야 할 시기다. 특성화고 학생에게 절망을 지우는 교육제도라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다음 소희에게 지워진 절망은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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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육희망" 4월 12일 자에 실렸습니다.

https://news.eduhope.net/25100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